안경
송인관 ((2011년 10월8일)
오십 줄에 처음으로 돋보기 안경을 썼다. 어린 시절에는 수숫강을 볏겨 하얀 수수목을 칼로 잘라 안경을 만들어 쓰고 다녔다. 비록 알이 없는 안경이지만 그것을 소중한 안경이나 되듯이 눈에다 걸치고 온 마을을 누비며 다녔다.
요즈음 경기지방에서는 수수 밭을 보기가 어려우며 수수농사가 사라진 지가 오래 된 것 같다. 시월 초순에 강원도 영월에 있는 청렴포를 다녀왔다. 그 곳에서 오랜만에 수수 알이 붉게 물들어 있는 수수 이삭과 수수 대를 보았다. 바람에 일렁이는 수숫대를 보면 어린 시절 친구들과 수수이삭을 따다 불에 튀겨 먹던 일들이 떠오른다. 사라져 가는 수수밭을 이곳 영월 땅에서 우연하게 달리는 차창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지금도 그 수수밭을 생각 하면 가슴이 찡하다.
지금은 길을 걷다보면 안경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많지만 나의 어린 시절에는 안경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가뭄에 콩 나듯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특히 신사나 숙녀들이 굵은 금테를 두른 안경을 쓰고 다니거나 의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지성미가 물씬 풍겨 늘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안경을 쓰고 다니는 사람이 너무나 많아 그들을 보면 부러움 보다는 측은지심이 앞선다.
안경은 1268년 ≪로저 베이컨≫이라는 사람이 광학적인 목적으로 렌즈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 시기에 유럽과 중국에서는 틀에 끼운 확대 렌즈를 사용하여 책을 읽었다. 서양이 동양에서 배웠는지, 동양이 서양에서 배웠는지는 확실한 근거를 알 수가 없지만 단 유럽에서는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안경이 나타났다.
우리 집에도 안경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집사람과 아들 그리고 손자가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어린 손자가 얼굴에 맞지 않은 큰 안경을 쓰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애처롭고 가엾은 생각이 앞선다. 손자 놈은 나하고는 戊寅生 띠 동갑인데 저러다가 시력이 나빠지면 어쩌나 하는 노파심도 생긴다. 나는 안경을 쓰고 다니지는 않지만 책을 보거나 글을 쓸 때에는 늘 돋보기를 쓴다. 어릴 때에는 시력이 1.2가 되었는데 요즘은 시력이 떨어져 0.5로 떨어져 눈뜬장님이라고 할까? 돋보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돋보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50대였으며 시간이 지나갈수록 도수를 높이고 있어 지금 우리 집 장롱 서랍을 열어보면 작고 타원형으로 된 안경에서부터 둥글고 큰 안경이 수도 없이 많다. 전에는 외출 할 때나 야유회에 갈 때에는 도수가 없는 검은 안경을 쓰고 다녔는데 지금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 쓰고 다니지를 않는다. 내 책상 서랍을 열면 보안경이 서너 개가 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아 서랍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집사람은 젊었을 때에는 나와 같이 시력이 좋았는데 한갑이 지나자 갑자기 시력이 떨어져 병원에서 정말조사를 하였더니 원시성 난시라고 하여 지금은 늘 안경을 쓰고 다닌다. 그런 와중에서도 ‛설상가상’ 눈이 갑자기 나빠지기 시작하여 병원에서 정말조사를 다시 받아 보았더니 “황반변성”이라는 회귀성 병이라고 한다. 그 후부터 지금까지 주기적으로 검사를 하고 치료를 받아 왔지만 4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별진전이 없어 지금은 현상유지를 하는 선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황반변성”이라는 병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시력이 감퇴되고 종국에는 시력을 잃고 만다.
요 며칠 전에는 우리 집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이사를 하였다. 그들이 두고 간 폐품들과 쓰레기를 치우는 과정에서 집사람이 안경을 잃어 버려 애를 태웠다. 처음에는 곧 찾을 수 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 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찾을 길이 막막하여 집안을 구석구석 찾아보았으나 결국은 찾지를 못하여 새로 안경을 맞추었다. 이제는 나이를 먹다보니 기억력도 감퇴 되고 시력도 떨어져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시력을 보호하는 미국산 ‛Ocuvite ’라는 약을 미국에서 살고 있는 조카가 보내줘 그 약을 매일 한 알씩 복용하고 있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인세대 인구는 2010년 현재 540 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10년 후인 2018년에는 고령사회에 이른다. 그리고 2026년이면 초 고령사회에 진입하며 2030년이면 1천만 노인 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그에 따라 우리는 건강에 대하여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될 것 같다. 또한 안경에 대한 기능과 도수 색상 모양 등도 다양하다 보니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나 할까 이왕이면 좋은 안경을 선택하여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면서 즐겁게 보내면 얼마나 좋겠나 생각해본다.
가마솥
송인관
어린 시절 부모님 밑에서 육남매가 초가집에서 살았다. 부엌에는 국솥, 밥솥, 가마솥 등 3개가 있었다. 가마솥에다가는 빨래도하고 밥도 짓고 겨울이 되면 물을 끓어 온 식구가 안마당에서 세수를 하였다. 눈보라가 치고 날씨가 차가운 엄동설한에는 안마당이 몹시 춥고 세찬 바람이 심하게 불어와 세수를 하는 등 마는 등하고 방으로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으면 손이 척척 달라붙곤 하였다.
입하가 되어 모를 심을 때나 가을이 돌아와 타작을 할 때에는 일군들이 많이 필요해 늘 가마솥에다 밥을 했다. 아버지 생신날이 돌아오면 년 중 행사로 동네 어른들과 친지들을 모시고 잔치를 벌었다. 밥솥으로는 그 많은 사람들이 먹을 밥을 짓지 못하여 큰 가마솥에다 밥을 하였다. 어머니는 밥을 다 푼 후에는 꼭 누룽지를 긁어 자식들에게 고르게 나누워 주셨다. 요즘도 식당에서 누룽지를 먹을 때에는 어머니가 긁어주던 누룽지 생각이 난다.
명절이 돌아오면 며칠 전부터 음식을 장만하기 시작한다. 가마솥에다는 해마다 엿을 고는데 하루 종일 불을 때다보면 아랫목 방바닥이 뜨거워 앉아 있을 수가 없도록 장판지가 까맣게 타버리곤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엿을 만드는데 어머니는 엿을 푸기 전에 먼저 조총을 떠서 자식들에게 맛을 보라고 하셨다.
여름철이 돌아오면 호박, 옥수수, 감자 등을 큰 무쇠 솥에다 가득 넣고 푹 삶아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온 식구들이 둘려 앉아서 먹는다. 모기가 극성을 부리면 모깃불을 피워 놓고 별이 총총히 박혀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여름밤을 밤이 새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지새웠다. 그 시절이 어제 같았는데 부모님은 이미 오래전에 우리 곁을 떠나셨고 여섯이나 되는 형제들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초등학교시절 동네 친구들과 양제천에서 물고기를 잡아 우리 집에서 천렵을 했다. 아이들이 욕심이 많아서 일까…. 배추, 파, 호박 등을 가마솥에도 잔득 넣고 매운탕을 끓었다. 워낙 양이 많고 보니 고추장이 생각보다도 의외로 많이 들어가게 되었다. 그 때 여름내 먹을 고추장을 많이 축을 내 어머니한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지금도 추탕을 먹을 때에는 그 때 그 친구들 생각이 난다. 이렇게 가마솥은 많은 추억을 나에게 남겨 주웠다.
학설에 의하면 가마솥을 사용하기 시작한 연대는 낙랑 9호 고분에서 토기로 만든 솥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으로 추측된다. 고구려시대의 고분벽화에는 입식 주방에 솥이 걸려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시루가 얹혀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삼국시대 후기의 고분인 경주 98호 고분이나 가야고분 등에서는 무쇠로 만든 다리가 있는 솥이 나왔다.
가마솥은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같이 지냈다. 요즘은 집 형태와 생활양식이 많이 바뀌었다. 방도 불을 때서 따듯하게 하는 온돌방에서 물을 대어서 뜨듯하게 하는 난방으로 바뀌었다. 부엌도 생활하기 편리하게 입식으로 바뀌었다. 수 천년동안 우리와 같이 생활해 오던 가마솥은 이제 우리 곁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요즘은 10년이 일세기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이 되었다. 거기에 따라 생활 패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금 나는 향교 명륜당에서 한학을 배운다. 어느 학문도 다 어렵지만 한문은 배우면 배울수록 그 뜻이 깊고 어려운 것 같다. 禮記, 海東小學, 孝敬大義, 大學, 中庸 등등을 배웠는데 그 뜻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서당하면 4촌 형이 떠오른다. 그는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신학문을 배우지 못한 백부님께서 이제 한글을 다 배웠으니 그만 다니고 서당에 가서 한학을 배우라고 하였다. 그는 백부님의 뜻에 따라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서당에 가서 한학을 배웠다. 그 후 군대에가 6.25 때 행방불명이 되어 지금껏 생사를 모르고 있다.
가마솥을 생각하면 어린 시절 친구들이 모여서 놀다가 글방에서 돌아오는 친구들을 보면 ‘하늘 천 따지 가마솥에 누룽지’ 하며 놀리던 일들이 주마등 같이 떠오른다. (2013년 5월 24일)
개울 건너 고논
송인관
개울 건너 고논은 아버지가 분가할 때 가지고 나온 논이다. 이 논은 항상 물이 고여 있고 논에 들어가면 흙이 무릎까지 빠진다. 거머리들은 제 세상을 만난 듯 활개를 치고 다닌다. 논에 들어가 일을 할 때에는 정강이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 먹는다. 그래서 나는 개울 건너 고논에서 일을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우리 마을은 옛날부터 농사를 천직으로 삼고 살아가는 마을이다. 농사철이 돌아와 모를 심을 때에는 일손이 모자라 부녀자들까지 논에 들어가 모를 심었다. 못줄을 띠어가며 모를 심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을 하지 못하면 자기 앞에 놓인 모를 심을 수가 없다. 모를 심다보면 거머리가 다리에 달라붙어도 띠어낼 시간이 없다.
우리 마을에 숙모님이 살고 계셨다. 젊어서부터 매년 우리 집 모를 심을 때에는 품앗이로 일을 오셨다. 모를 심을 때에는 거머리가 정강이에 달라붙어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모를 심어 주위사람들이 차질기가 찰고무 같다고 하였다. 숙모님이 내 자식이 태어날 때 산파 역할을 하였다. 그 자식이 성장하여 지금은 분당에서 산다. 매년 명절이 돌아오면 담배를 한 보류 사들고 숙모님을 찾아뵙고 세배를 올린다. 그런 숙모님이 94세로 수년전에 돌아가셨다.
시대가 많이 변해 요즘은 이양기로 모를 심어 일손이 필요하지 않다. 이양기가 나오기 전에는 논바닥을 쟁기를 이용하여 갈았다. 갈은 논에 물을 잡아서 다시 논을 갈았다. 마지막으로 써레질을 하여 모 심기가 좋게 논을 고른 후 못자리에서 자란 벼를 옮겨 심었다.
아버지는 모를 심을 때에는 늘 나에게 모지기를 하라고 하셨다. 모지기를 하면서 제일 힘들 때는 일꾼들이 모가 모자라 아우성을 칠 때이다. 물은 정강이 까지 차오르고 흙은 무릎까지 빠져 못단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데 모를 달라고 아우성이니….
그 당시 나는 나이도 어렸지만 농사일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그러나 모를 낼 때에는 모지기도 하고 못논을 맬 때가 되면 논에 들어가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였다. 못논을 매다보면 억센 벼 잎이 눈을 찌를 때도 있고 팔목을 스쳐 상처를 내기도 했다. 힘이 들고 일이 벅차다보면 종종 코피를 쏟을 때가 있다. 벼농사를 짓는데 가장 힙이 드는 때는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고 매미마저 덥다고 맴맴 하고 울어대던 삼복 때가 아닌가 한다.
삼복이 지나 추석이 돌아오면 벼는 누릇누릇 익어가고 온 들녘은 황금물결로 일렁인다. 개울건너 논도 벼가 고개를 숙어 벼를 베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이때에도 묶은 볏단을 논두렁위로 내놓으라고 하신다. 물에 퉁퉁 불은 볏단을 무릎까지 빠지는 고논에서 끄집어내다보면 정강이를 스쳐 피 몽이 들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이나 나이가 들어서서도 개울건너 논에서 일을 하는 것을 나는 죽기보다도 싫어했다.
가을철로 들어서 벼가 황금물결을 이루면 메뚜기 때들이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다. 개울 건너 논에는 유난히도 메뚜기가 많았다. 그 때 나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메뚜기를 잡기도 하고 논두렁에 있는 콩을 꺾어 콩서리를 하며 지냈다.
모를 심을 때도 중요하지만 벼를 털어 추수를 할 때도 년 중 큰 행사다. 볏단을 끌어 드려 집에서 탈곡을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논에서 벼를 털 때도 있다. 논에서 탈곡을 할 때에는 들타작이라고 부른다. 개울 건너 논에서 벼를 털 때에는 볏단을 날라주고 턴 짚단을 한 짐씩 지고 빈 논에다 넌다. 그 일도 아버지는 나에게 시컸다. 그 일을 하루 종일하다보면 초죽음이 된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우리 마을도 많이 변했다. 농토의 대부분을 경마장에서수용을 하였다. 마을은 초가집에서 현대식 주택으로 바뀌었다. 마을 앞으로는 차들이 꼬리를 물고 달린다. 우리 마을에서 막다른 집이었던 우리 집 앞에는 버스정거장이 생겼다. 개울건너 고논은 밭이 되었다. 주위는 모두 흙으로 매 꾸어졌고 꼬불꼬불한 논길은 강남으로 가는 도로로 변하였다.
(2011년7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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