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

영원한 선망의 여인 黃眞伊 (황진이)

송 관 2012. 9. 7. 02:58



♣ 영원한 선망의 여인 黃眞伊 (황진이) ♣

조선 중종대 개성의 기생, 시조시인.
박연폭포·서경덕과 함께 송도3절(松都三絶)이라 일컫는다.
재색을 겸비한 조선조 최고의 명기이다.
어디를 가든 선비들과 어깨를 겨누고 대화하며
뛰어난 한시나 시조를 지었다.

가곡에도 뛰어나 그 음색이 청아했으며,
당대 가야금의 묘수(妙手)라 불리는 이들까지도
그녀를 선녀(仙女)라고 칭찬했다.
황진사의 서녀라고도 하고 맹인의 딸이라고도 하는데,
일찍이 개성의 관기가 되었다.
15세 때 이웃의 한 서생이 황진이를 사모하다 병으로
죽게 되었는데, 영구가 황진이의 집 앞에 당도했을 때
말이 슬피 울며 나가지 않았다.

황진이가 속적삼으로 관을 덮어주자 말이 움직였 단다.
이 일이 있은 후 기생이 되었다는 야담이 전한다.
기생이 된 후 뛰어난 미모, 활달한 성격, 청아한 소리,
예술적 재능으로 인해 명기로 이름을 날렸다.

화장을 안 하고 머리만 빗을 따름이었으나 광채가 나
다른 기생들을 압도했다.
송공대부인(宋公大夫人) 회갑연에 참석해 노래를 불러
모든 이의 칭송을 들었고 다른 기생들과 송공 소실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았으며, 외국 사신들로부터 천하절색
이라는 감탄을 받았다.

성격이 활달해 남자와 같았으며, 협객의 풍을 지녀
남성에게 굴복하지 않고 오히려 남성들을 굴복시켰다.
30년간 벽만 바라보고 수도에 정진하는 지족선사
(知足禪師)를 찾아가 미색으로 시험해 결국 굴복
시키고 말았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시정의 돈만 아는 사람들이 천금을 가지고 유혹해도
돌아보지 않았으나, 서경덕이 처사(處士)로 학문이
높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시험 하다가 그의 높은
인격에 탄복하여 평생 서경덕을 사모했다.

거문고와 술·안주를 가지고 자주 화담정사를 방문해
담론하며 스승으로 섬겼다.
종실(宗室)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보기를 원했으나
황진이는 명사가 아니면 만나주지 않아 친구 이달에게 의논했다.

이달은 "진이의 집을 지나 누(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한 곡을 타면 진이가 곁에 와 앉을 것이다.
그때 본 체 만 체하고 일어나 말을 타고 가면 진이가
따라올 것이나 다리를 지나도록 돌아보지 말라"하고 일렀다.

벽계수는 그의 말대로 한 곡을 타고 다리로 향했다.
황진이가 이때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다시 오기 어려웨라
명월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라는
시조를 읊었다. 이것을 들은 벽계수는 다리목에 이르러
뒤를 돌아보다 말에서 떨어졌다.
황진이는 웃으며 "명사가 아니라 풍류랑(風流郞)이다"
라고 하며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소세양이 황진이의 소문을 듣고 "나는 30일만 같이 살면
능히 헤어질 수 있으며 추호도 미련을 갖지 않겠다"라고 장담했다.

그러나 황진이와 만나 30일을 살고 이별하는 날 황진이가
작별의 한시 〈송별소양곡 送別蘇陽谷〉을 지어주자
감동하여 애초의 장담을 꺾고 다시 머물렀다고 한다.
명창 이사종과는 그의 집에서 3년, 자기 집에서 3년,
모두 6년을 같이 살고 헤어졌다.
풍류묵객들과 명산대첩을 두루 찾아다니기도 해 재상의
아들인 이생과 금강산을 유람할 때는 절에서 걸식하거나
몸을 팔아 식량을 얻기도 했다고 한다.

죽을 때 곡을 하지 말고 고악(鼓樂)으로 전송해달라,
산에 묻지 말고 큰 길에 묻어달라,
관도 쓰지 말고 동문 밖에 시체를 버려 뭇 버러지의 밥이
되게 하여 천하 여자들의 경계를 삼게 하라는 등의
유언을 했다는 야담도 전한다.
임제가 평안도사가 되어 부임하는 도중 황진이의 무덤에
제사를 지내면서 지었다는 청초 우거진 골에…
로 시작되는 시조가 전한다.

그녀는 동짓달 기나긴 밤을…로 시작하는 시조를 포함해
모두 8수가량의 시조를 남겼고
별김경원 別金慶元〉〈영반월 詠半月〉
〈송별소양곡〉〈등만월대회고 登滿月臺懷古〉
〈박연 朴淵〉〈송도 松都〉 등의 한시를 남겼다.
〈식소록 識小錄〉〈어우야담〉〈송도기이 松都紀異〉
〈금계필담 錦溪筆談〉〈동국시화휘성 東國詩話彙成〉
중경지 中京誌〉〈조야휘언 朝野彙言〉등의 문헌에
황진이에 관한 일화가 실려 전한다.

황진이의 연정 가운데 가장 짧았던 건 대제학을 지낸 陽谷 蘇世讓과 나눈 사랑입니다.
두 사람은 애초 30일을 기한으로 동거생활에 들어갔는데 날을 채운 뒤 蘇世讓 이
떠나려 하자 황진이는 다음의 시 한 수로 발걸음을 잡아맸습니다.

月下庭梧盡 (월하정오진) 달빛 새하얀 뜰엔 오동잎 지고
霜中野菊黃 (상중야국황) 서리 속에 들국화 노랗게 피였네
樓高天一尺 (루고천일척) 다락은 높이 솟아 하늘이 한자인양 가까이 보이고
人醉酒千觴 (인취주천각)사람은 천상 술에야 취해 오누나
流水和琴冷 (유수화금냉) 흐르는 물은 거문고 소리에 섞여 차갑게 들리고
梅花入笛香 (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 소리에 들어 향기롭구나
明朝相別後 (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서로 이별한 뒤에도
情與碧波長 (정여벽파장) 사랑은 푸른 파도처럼 변함이 없을 것을

두 사람의 사랑이 그 뒤 얼마나 지속됐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분명한 건
황진이가 소세양과 헤어진 뒤에도 그리움에 찬 나날을 보냈으며 侍婢 (시비)
동선이를 시켜 한양에 있는 소세양에게 전하게 했다는 글이 다음의 시입니다.
소세양은 황진이가 유일하게 남자로 사랑했던 인물로
당대 제일의 문장과 일세를 풍미했던 재화의 멋과 격이 심금을 울립니다.

蕭寥月夜思何事소요월야사하사:달 밝은 밤이면 그대는 무엇을 생각하나요.
寢宵轉輾夢似樣 (침소전전몽사양) 잠이 들면 그대는 무슨 꿈을 꾸시나요.
問君有時錄 忘言 (문군유시녹망언) 붓을 들면 때로는 제 이름도 적어보나요.
此世緣分果信良 (차세연분과신량) 저를 만나 기쁘셨나요?
悠悠憶君疑未盡 (유유억군의미진) 그대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게 궁금해요.
日日念我幾許量 (일일염아기허량) 하루에 제 생각 얼마만큼 하나요.
忙中要顧煩或喜 (망중요고번혹희) 바쁠 때 얘기해도 제 말이 재미있나요.
喧喧如雀情如常 (훤훤여작정여상) 참새처럼 떠들어도 여전히 정겨운가요.

황진이의 연정 가운데 가장 짧았던 건 대제학을 지낸 陽谷 蘇世讓과 나눈 사랑입니다.
두 사람은 애초 30일을 기한으로 동거생활에 들어갔는데 날을 채운 뒤
蘇世讓 이 떠나려 하자 황진이는 다음의 시 한 수로 발걸음을 잡아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