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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는 정령(精靈)이며, 서양에서는 요정이라고 말한다.
예기(禮記)에 보면
'천자(天子, 황제)가 죽는 것을 붕(崩)이라 하고,
제후(諸侯)는 훙(薨), 대부(大夫)는 졸(卒),
사(士)는 불록(不祿: 죽으면 녹을 받지 못한데서 나온 말),
서인은 사(死)라고 한다.
죽어서 침상에 있는 것을 시(尸)라 하고,
관(棺) 속에 있는 것을 구(柩)라고 한다.
새가 죽는 것을 강(降)이라 하고,
네발 짐승이 죽는 것을 지(漬)라고 하며,
구난( 寇難 : 외국의 침략이나 난리)에 죽는 것을
병(兵)이라 한다.

서경(書經) 홍범편에
오복(五福)은
수(壽), 부(富), 강(康), 덕(德), 명(命)으로
命은 '자기 집에서 일생을 편안히 마치기를 바란다' 는
고종명(考終命)이다.
우리 민족의 최대 민속놀이인 윷놀이를 보자.
학자들에 따라
돼지(豚), 개(犬) 등 가축의 명칭으로 설명하기도 하나,
윷놀이라는 명칭에서도 알 수 있듯
이것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과정을 나타내는 것이다.
'태어나다'를 '태'라고 하는데
그 고형(古形)은 '타'이고, '도'의 원형이다.
태어나서 머지않아 '게(기어 다니다)'하고,
이어서 '걸(걷다)'하게 된다.
걷게 되면 '윷(나아 가다)'하게 되는 데,
결국 '모(墓)'에 들어 가게
되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상여의 곡소리인 '어이 어이'는
임금님 수레인 어이(御車+多)로,
임금님이 나아가시는 길 즉, 어로(御路)이다.
이는 망자를 받드는 형식이며, 죽음의 공포를 벗어나려는
산 자의 자위의식이기도 하다.
레미제라블을 쓴 빅토르위고는
그의 저서에서
'오늘 내가 사는 목적은 싸우는 데 있다.
내일 내가 사는 목적은 이기는 데 있고,
일생동안 내가 사는 목적은 잘 죽는 데 있다'라고 했다.
이 또한 고종명(考終命)이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독설가였던 버나드 쇼는
자기의 묘비명에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다'고 새겼다고 한다.
일생의 삶이 그리도 허탈함이었을까.?
'아테나의 청년들을 부패시키고,새로운 신을 섬긴다'는
죄명으로 독배를 마신 소크라테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제자들이 얼굴을 감싸고 통곡하자,
소크라테스는
'웬 곡소리들인가, 이런 창피한 꼴을 보게 될까 봐
아낙네들을 먼저 보냈거늘,
사람은 마땅히 평화롭게 죽어야 한다고 들었네,
조용하고 꿋꿋하게 행동하게' 라며 태연히
독약을 마셨다.
죽음에 대한 표현은 종교 마다 다른 용어를 쓴다.
천주교는
서거(逝去)를 선종(善終)이란 말로 썼다.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끝마친다'는 뜻으로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준말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묵상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매년 11월을 위령성월(慰靈聖月)로 하고 있다.
개신교에서는
'세상과 이별한다'는 뜻의 별세(別世)를 쓰기도 하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다'는
소천(召天)을 쓰기도 한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누가복음(20:38)의 기록도 보인다.
민족종교인 천도교에서는
모든 생명은
바로 한울님 곧 우주라는 커다란 생명에서 온 것이며,
동시에 죽게 되면
이 우주의 커다란 생명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며
환원(還元)이라는 용어를 쓴다.
-한울의 '고대사 메모' 중에서 옮김-
처음과 끝이 있음을 알고
만남과 이별을 나 알고 있기에
스스로 내 인생에 만족하며요람에서 무덤까지
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