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규의 [25시]
젊은 세대에게는 생소할지 모르지만, 전쟁과 이데오르기의 갈등을 경험하는 등 고난과 역경을 겪은 60~80대에게는, 게오르규의 [25시]는 너무나 잘 알려진 소설이다. 나는 이 소설을 중1 때 읽었다.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소설이 발표되면 기다렸다가 즉각 책방에서 서 사오던 문학소녀인 누나의 책을 슬쩍슬쩍 틈 나는 대로 마구잡이로 읽어대곤했다.
그 때는 [25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몰랐고, 도입부에 주인공 모리츠가 스잔나와 찬 이슬을 맞으며 밤을 보내는데, 어린 나이에도 마음이 괜히 설레이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뒤 대학에 다닐 때 다시 이 소설을 제대로 읽었고, 연애시절 안소니 퀸이 주연한 이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요한 모리츠는 그렇게 바랐던 미국행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출발하기 전날 밤, 사랑하는 스잔나와 만나는 현장을 그녀의 아버지한테 들켰기 때문에 그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살면서 두 아이를 낳았고, 열심히 일해 땅과 집도 생겼다.
어느 날, 스잔나 혼자 일하고 있을 때 헌병이 와서 그녀를 유혹했다. 그런데 그녀가 헌병을 쫓아 버린 1주일 뒤에, 모리츠에게 징집 명령이 전달되었다. 스잔나를 차지하기 위해 헌병이 루마니아인인 모리츠를 유대인으로 몰아 강제 수용소에 넣어 버린 것이다.
모리츠가 강제 노동에 종사한 지 반 년이 지난 어느 날, 그는 스잔나가 이혼 신청을 보낸 사실을 알고 본의 아니게 거기에 서명했다. 그는 유대인 의사의 권유를 받고 유대인의 압박이 없는 헝가리로 탈출했다.
그러나, 거기서도 모리츠만은 루마니아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스파이 혐의로 고문 당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헝가리의 수용소에 수감되어 다시금 강제 노동을 해야 했다. 그러다가 헝가리 정부에 의하여 헝가리 노동자로서 독일에 팔려가게 되었다.
독일에서 고된 노동에 종사하고 있을 때, 모리츠는 인류학을 연구하는 독일군 대령의 눈에 띄게 되었다. 그 대령은 모리츠를 우생학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대령의 명령으로 모리츠는 독일 군인이 되었고, 독일 여자 힐다와 결혼하여 자식까지 낳았다.
한동안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런데 수용소에 갇혀 있던 프랑스인에게서 연합군의 승리가 가까웠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고, 그 승리의 날에 아내와 자식을 보살펴 준다는 조건으로 모리츠는 프랑스인을 탈출시키면서 자신도 그와 함께 탈출했다.
그들은 무사히 URA(국제 연합 구제 협회)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모리츠는 적국 루마니아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다시금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모리츠는 청원서를 통해 자신이 갇혀야 하는 이유를 밝혀 달라고 호소했으나 아무런 회답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아내인 힐다의 어머니로부터 편지가 왔다. 독일은 전쟁에 졌고, 모리츠와 힐다가 살던 집은 불탔으며, 아이를 껴안고 죽은 힐다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열다섯 번째의 수용소에서 고향의 신부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에게서 의외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스잔나는 그 헌병한테 집을 몰수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마지못해 이혼 신청에 서명했다는 소식이었다.
마침내 모리츠가 수용소에서 석방되는 날이 왔다. 그는 13년 동안이나 고국을 떠나 있었다. 무려 1백여 곳의 수용소를 전전한 뒤에 겨우 아내와 자식을 만나게 되었으나, 거기에는 그가 알지 못하는 어린애가 하나 더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옛날과 다름없이 스잔나를 껴안고 숨이 막힐 만큼 키스를 퍼부었다. 두 사람은 젊은 연인들처럼 힘껏 껴안았다. 13년 동안에 일어난 모든 불행이 가셔지는 듯했다. 그러나, 모리츠의 자유는 오직 열여덟 시간으로 끝났다. 동부 유럽의 외국인은 모든 수용소에 감금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이제 도망갈 만한 용기도 없었다. 그는 가족을 살리기 위해 미국 군대에 외국인 의용군으로 지망했다. 의용군이 되면 가족들은 수용소에 갇히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의용군이 될 자격도 없었다.
모리츠는 의용군 징집 사무소에서 자기를 받아들여 달라고 호소했다. 옆에 서 있는 아내와 낯선 막내아이를 바라보면 암담한 느낌만 들었고, 너무나 큰 절망감으로 해서 울고 싶을 따름이었다.
징집소장은 의용군 신청이 많아 기분이 몹시 좋았다. 그는 모리츠의 사진을 찍어 신문에 광고할 목적으로 그에게 "웃어!" 하고 명령했다. 웃으라고 했지만 모리츠는 웃을 수 없었다.
다시금 죽음의 전쟁터에 가야 할 것을 생각하면 절망감으로 울고 싶을 따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위는 다시금 재촉하는 것 이었다. "웃어! 웃어!"]
저자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는 1916년 루마니아 태어나 부쿠레슈티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재학 시절 시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는 시인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징집영장을 받고 전장에 나갔던 그는 전쟁의 온갖 참상을 목격하고 군 생활을 마친 뒤에는 집필 생활에만 전념하게 된다. 1940년 시집《눈 위의 낙서》로 루마니아 왕국상을 받았으나 루마니아에 공산정권이 세워지자 게오르규는 독일로 망명했다.
그러나 독일도 연합군과 소련군에게 점령되고 연합군의 적성 국가인 루마니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수용소에 감금, 2년간의 비참한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석방된 뒤 이때의 체험을 토대로 [25시] 집필을 시작하였고, 독일에서의 생활도 여의치 않게 되자 1949년 프랑스로 망명, 세계를 놀라게 한 작품 [25시]를 프랑스에서 출간하게 된다.
[25시]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 낀 약소민족의 고난과 운명을 그린 소설로, 현대의 악을 고발한 수작으로 손꼽히며, 전쟁의 부조리성과 그 냉혹한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고발 문학이다.
게오르규는 소설 속의 여러 인물들이 전쟁과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 경험하는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25시'라고 정의하며, 이를 극복하는 방법은 오직 인간성 회복을 통해서만이 가능함을 역설한다.
소설 [25시]는 인간성 부재의 상황과 폐허 및 절망의 시간을 의미하며 극한의 시간을 극복 할 수 있는 길은 인간성의 회복이라고 역설한다. 24시 즉,'인간성 상실'은 이미 지났는데, 새로운 날 즉 '인간성 회복'은 오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게오르규는 1976 (60세) 한국을 소재로 한 소설의 자료 수집차 두 번째로 방한했고, 1984 (68세) KBS의 초청으로 부인과 함께 세번째 방한했으며 1992 (76세) 6월 22일 파리에서 적혈구가 감소하는 지병으로 사망했다. 안타갑게도 한국의 분단을 소재로 한 소설은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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