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문화제
단종은 조선 제 6대 임금으로 열두살 어린나이 왕위에 올라 2 년 후인 열 네살 때 정순왕후를 맞이하고 단종 3 년 6 월11일 숙부인 수양 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게 되었으니 그의 나이 열 다섰살이었다.
세조 1년 상왕으로 물러나 이듬해 노산군으로 강봉되여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어 지내던중 홍수로 인해 청령포에서 관풍현으로 옮기어 지내면서 자규시를 남겼다.
세조3년(1457)10 월 24일 사약을 내리니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삶을 마감하였다. 단종이 승화한 후 단종의 시신에 손을 대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말에 아무도 시신을 거두지 않았으나 영월 호장 엄흥도가 시신을 거두어 영월 엄씨들의 선산인 동을지산에 매장하였다.
이후241년이 지난 숙종 24년(1698) 11월 6일 마침내 노산대군에서 단종으로 복위되고 능호도 노릉에서 장릉으로 추복 되였고 장릉은 1970년 5월 26일 사적196호로 지정되였다.
영월 군민들은 1967년 4월 단종제 향일에 문화제를 함께 개최함으로써 단종의 고혼과 충신들의 넋을 축제로 승화시킨 단종 문화제를 탄생 시켰으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왕릉에 제향을 올리는 43년의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전통 역사 축제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 <2009년영월 단종제 단종은 영월고등학교3학년 정상훈 단종비 순정황후는 서울 풍문여고 3 학년 문유미 양(2009년4월25/26일행사 ) 이 선정됬다고함>*
(정순왕후)
(여산부원군 송현수의 딸로1454년 16세 나이로 단종의 비로 간택됨)
영월 청령포에 유배된 단종은 한양의 두고온 아내를 그리워 하는 한편 서려운 자신의 심정을 시로 토로 하며 하염없는 두려움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단종의 비애는 망향탑이라는 돌탑에 묻어 있다. 청령포는 삼면이 바다로 둘려 쌓여 있다 단종은 이곳을 육지 고도라고 불렸으니 그 외로움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단종이 노산군으로 감봉 됨에 따라 궁궐에서 쫒겨난 정순황후는 지금의 종로구 승인동 동막산에 초막을 짖고 끼니를 잊지 못하는 어려운 생활를 하였다.
왕후는 매일 동망봉에 올라 영월쪽을 향해 단종의 안위를 빌였으나 결국 사사 됨에 따라 정순왕후는 동망봉에 올라 아침 저녁으로 통곡하며 울자 이웃의 부녀자들은 같이 울였고 이를 동정곡이라고 후세의 이름을 남겼다고 한다
출처 : 월간 문학세계
글쓴이 : 송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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